한민족의 외국침략 사례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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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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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은 흔히 우리가 남의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는 평화 애호 국가라고 자임하는 경우가 많고 대통령조차 그런 취지의 발언을 다른 나라 대통령에게 서슴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따져보면 이같은 말은 틀린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어떻게 특정한 나라가 침략을 받기만 하고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물론 평화애호국임을 강조하다보니 그런 말이 나왔겠지만 역사적 사실관계를 살펴볼 때 틀린 주장이기때문에 앞으로 바로잡을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한국의 외침 사례 총 64회]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경우 대외 전쟁에 대해서 역사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중심으로 상식선에서 계산하고 삼국시대의 경우 삼국사기 내용을 정리해 보면 지난 2천여년동안 우리 나라가 남의 나라를 침략한 사례는 64회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이른바 중국을 침략한 사례는 21번인데 낙랑과 대방에 대한 침략을 포함한 것입니다.
중국에 대한 침략과 별도로 여진이나 거란, 선비와 같은 북방 아시아 민족을 침략한 사례는 12번입니다.
대마도를 포함해서 일본에 대한 침공은 5번.
후기 신라시대와 고려 시기에 중국의 요청으로 대규모 군사를 파병한 사실이 2번 있습니다.
이외에 고구려와 신라, 백제의 주변 국가 병합 사례가 24번이 기록돼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볼 것인지가 좀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3국에 의해 병합된 국가와 국민은 결국 지금 우리가 조상님으로 모시고 있기때문에 내전으로 계산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정리해보면 외국을 침략한 사례는 지난 2천여년동안 모두 64회로 정리할 수 있는데 이 가운데 고구려와 신라, 백제가 주변 소국을 병합한 사례를 내전으로 간주해서 외침 계산에서 제외한다면 우리의 외침 회수는 총 40회로 볼 수 있습니다.
사례를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북부 지방 영토 확장]
1434년에 김종서가 여진족이 준동하던 두만강 유역에 동북 6진을 설치했고 1443년에는 최윤덕이 압록강 상류지역에 4군을 설치했는데 이는 고려 초기부터 진행된 북진정책의 결과물이며 이 과정에서 현지에 거주하던 여진족들은 북쪽으로 내몰렸습니다.
[대마도 정벌 세차례]
조선시대 초기에 대마도 정벌을 위해 두 차례 대규모 군대를 파견한 사례가 있습니다.
1419년 세종 1년에 이종무가 대마도를 정벌에 나섰고 1396년 태조 5년에 김사형이 대마도 정벌에 나섰습니다.
외국이 우리를 침략한 사례에 왜구의 침략 가운데 일부를 포함시킨바 있었기때문에 우리 정부의 군대 파견은 당연히 침략 사례로 파악해야 합니다.
고려말에도 같은 이유로 군대를 한 차례 파견한 적이 있고 1389년 공양왕 1년에 박위가 병선 100척을 이끌고 대마도를 공격했습니다.
[요동정벌 출진]
고려말 1388년 명나라가 철령위 설치를 통고해 온 것에 반발해 국왕의 명령으로 명나라 영토인 요동을 정벌하기 위해 군대를 조직해서 파견했습니다.
위화도 회군으로 전투행위는 없었지만 침략할 의도를 갖고 대군을 조직하고 출정시킨 사실을 중시해서 우리의 외국 침략 사례로 포함해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윤관 장군의 여진족 정벌]
고려 중기 예종대왕 시기에 두 차례에 걸쳐 여진족의 영역을 침략했습니다.
1105년에 1차, 1107년에 2차 공격을 단행한 결과 지금의 함경도 지역의 상당부분을 직할 영토로 확보하고 여진족의 충성을 재확인한 뒤 군사를 철수시켰습니다.
이 가운데 2차 공격은 병력 17만명을 동원하는 등 당시 기준으로 엄청난 규모의 전쟁이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17만명을 동원했다는 기록을 믿을 수 없다고 하는데...
당시 고려 조정에서 전쟁 착수에 대한 회의를 할 때 예종 임금님이 신하들에게 말하면서 조그만 나라 여진족이 대국인 고려의 위엄에 도전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대군을 조직해서 위엄을 보여주라고 명령하는 대목이 나온다는 점을 상기해야겠습니다.
저는 17만명이 허풍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유금필 장군의 여진족 정벌]
고려 초기 태조대왕 시기에 장군 유금필을 파견해 현재의 금강산 북부 지역에 위치한 여진족의 마을을 습격해 추장 등 3백여명의 목을 벴습니다.
이후 유금필은 여진족을 비롯한 북방 민족 출신 부대를 구성해서 후삼국 통일 전쟁에 나서게 됩니다.
[여몽 연합군의 일본 정벌]
고려 중기에 몽골과 연합해서 일본을 두 차례 침략한 것도 중대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1274년 8월에 함선 9백척에 고려군 8천, 몽골군 2만 5천으로 일본을 침략했고 1281년 1월에는 몽골에서 함선 4,400척에 병력 14만명이 투입됐고 고려군은 2만 7천명이 동원됐습니다.
중간집계를 하면 조선과 고려 시기에 우리가 외국을 침략한 것은 11차례가 됩니다.
[40회 외국 침략과 90회 피침 사례의 질적 비교]
우리가 40번 침략을 했다고 계산할 때 침략을 당한 사례인 90회와 비교하면 훨씬 적다고 말할 수 있지만 사실 내용을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고구려의 경우 고주몽 대왕이 지금의 국내성 근처에 도읍한 이후 비약적인 팽창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송양의 비류국을 비롯해 행인국, 조나국, 동옥저, 북옥저 등 10여개 나라를 멸망시키고 고구려 영토로 삼은 사실이 있습니다.
고구려가 영토 확장 전쟁을 벌이는 시점에서 보면 이들 국가는 외국이었으므로 실질적으로 우리나라가 외국을 침략한 사례에 해당합니다.
다만 이들 나라들은 완전히 소멸되고 고구려라는 이름 아래 우리나라의 역사로 편입된 것으로 평가해야 하기때문에 내전 차원에서 이해해서 외국에 대한 침략 사례로 분류하지 않았을 따름입니다.
굳이 병합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고구려는 중국의 한족 국가와 주고받는 전쟁을 자주 했고 특히 고구려가 선제공격을 한 사례도 많기때문에 침략을 받은 나라로 인식하기보다는 남의 나라 침략을 더 많이 한 나라로 인정하는 것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한다고 하겠습니다.
신라도 역시 끝없는 팽창을 거듭한 나라로 삼국사기에서 신라에 의해 병합된 나라로 명기된 나라만 10개국 이상이고 6개국으로 나뉘어있던 가야가 모두 신라에 병합된 만큼 신라가 멸망시킨 나라는 20개국 이상으로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백제의 경우도 역시 백제가 처음 생겼을 당시 마한을 비롯해서 지금의 충청도 지역과 전라도 지역에 존재하던 나라는 줄잡아도 50개가 넘었다고 합니다.
이 모든 나라가 600여년이 지나면서 백제의 깃발 아래 하나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침략을 당하기만 한 약소국이 영토를 어떻게 확장했는가?]
고려와 조선의 경우도 침략을 받은 것이 20여차례 되는데 침략을 한 사례는 10여 차례로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을 뜯어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옵니다.
918년 고려 건국 이후 약 천년동안 한국의 영토가 크게 확장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침략을 여러 차례 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때마다 잘 물리쳐서 영토를 유지한 반면에 우리가 남의 나라를 쳐들어갔을 때는 점령지의 정부를 아예 소멸시켜버리고 우리 영토로 만들어버렸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침략을 할 때는 정부를 붕괴시키고 현지 주민을 북쪽으로 쫓아냈거나 한국 국민으로 귀화시켜버렸기때문에 추가적인 침략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처럼 횟수로 보면 침략을 많이 당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영토가 확장됐다는 사실은 우리의 외국 침략이 질적으로 더욱 강력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봅니다. 고려시대 이후 꾸준히 유지됐던 북진정책에 따라 고려 시대 초기의 평안도 지역 영토 확장, 고려 중기의 함경도 지역 영토 확장, 조선 시대 초기 함경도 북부 지역의 영토 확장이 바로 결정적인 사례가 됩니다.
물론 제국주의 시절 초기에 우리가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둔감해서 일본의 침략을 받고 국가 자체가 소멸될 뻔한 위기에 빠진 부분은 지난 2천년의 역사에서도 유사사례가 거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2천년의 역사에서 보면 분명히 예외적이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침략과 피침이 균형을 이루는 보통의 나라]
어찌됐든 우리나라는 외국으로부터 침략을 당한 사례와 외국을 침략한 사례가 대체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고 오히려 침략을 감행해서 영토를 늘려온 쪽에 무게가 실리는 보통의 나라라고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방적으로 침략을 당했다거나 정반대로 일방적으로 영토를 확장하기만 했다거나 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특히 일제의 침략과 임진왜란, 병자호란, 몽골의 침략 등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면서 우리나라를 일방적으로 얻어맞기만한 약소국으로 인식하는 것은 대체적으로 일제가 의도적으로 교육시킨 식민 사관에 매몰된 결과로 추정됩니다.
또한 광개토대왕의 영토 확장을 국민적 자부심의 근거로 강조하고 윤관 장군의 여진족 정벌이나 김종서 장군의 북부 지역 영토 병합을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우리 조상님들에 의해 침략을 당한 북방민족 주민들의 아픔을 외면하는 식의 역사 인식도 역시 식민사관에 반발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다가 범하게 되는 오류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볼 때 때로는 남의 나라의 침략을 받아서 모진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용맹한 군대와 자주적인 성향의 국민들이 나서서 나라의 정체성을 유지했고 때로는 남의 나라를 침략해서 남의 나라 국민에게 못된 짓을 한 적도 있다고 정리하는 것이 공평하고 객관적인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조-우리 민족의 외국 침략 사례 연표]
1.서기전 39년 변한이 신라에 귀부.
2.서기전 36년 비류국의 국왕 송양이 고구려에 항복. 다물도 설치.
3.서기전 32년 고구려, 행인국 공취 병합.
4.서기전 28년 고구려, 북옥저 공취 병합.
5.서기전 11년 고구려, 선비족 공파. 속국화.
6. 8년 온조, 마한 공취. 마한은 다음해 멸망.
7. 12년 고구려, 왕망의 한나라 여러번 침략.
8. 14년 고구려, 한 고구려현 공취.
10. 26년 고구려, 대무신왕 개마국 정벌. 국왕 살해.
11. 같은 해 구다국이 고구려에 귀부.
12. 32년 고구려 대무신왕, 낙랑 침공. 낙랑 항복.
13. 37년 고구려 무휼, 낙랑 습격. 낙랑 멸망.
14. 49년 고구려 모본왕, 한나라 북평, 어양, 상곡, 태원 침공.
15. 56년 고구려 태조대왕, 동옥저 공취.
16. 68년 갈사국왕 도두, 고구려에 귀부
17. 72년 태조, 조나국 정벌, 국왕 생포.
18. 74년 태조, 주나국 정벌, 왕자 생포.
19. 102년 신라, 음즙벌국 정벌. 실직국, 압독국도 잇따라 항복.
20. 105년 태조, 요동 침략. 6현 약탈. (요동태수가 반격 침공)
21. 108년 신라, 비지국 다벌국 초팔국 공취 병합.
22. 118년 태조, 예맥과 함께 한나라 현도 침공. 화려성 공격.
23. 121년 태조, 한의 침공에 맞서 반격 침공. 선비족 8천명 동원해 요수현 공격. 요통태수 전사. 마한, 예맥 기병 만명을 동원해 현도성 포위. 부여가 한나라 지원해서 고구려 패배.
24. 122년 태조, 마한 예맥과 다시 요동 침공. 부여가 한나라 지원.
25. 169년 신대왕, 현도태수 공손도와 더불어 부산적 토벌.
26. 185년 신라, 소문국 정벌.
27. 209년 신라, 가야를 침략한 포상 8개국을 격파하기 위해 출전. 가야포로 8천명 생환.
28. 231년 신라, 감문국 토벌. 병합.
29. 236년 골벌국, 신라에 항복.
30. 238년 고구려 동천왕, 위나라의 공손연 공격때 군사 천명 파견해 지원.
31. 242년 동천왕, 요동 서안평 습격 파괴.
32. 300년 낙랑과 대방이 신라에 와서 항복.
33. 302년 고구려 미천왕, 현도 침략. 8천명 나포. 평양으로 강제 이주.
34. 311년 미천왕, 서안평 공취.
35. 313년 미천왕, 낙랑 침략. 2천명 생포.
36. 314년 미천왕, 대방 침략.
37. 315년 미천왕, 현도군 공파.
38. 319년 고구려, 단씨 우문씨와 더불어 모용부 공격. 모용부의 심리전이 성공해서 연합군 체제 중단. 고구려 철군했지만 모용씨 반격이 시작돼 요동 지역 평정. 모용부와의 싸움은 원래는 293년에 모용외가 선제 공격해서 비롯된 것.
39. 320년 미천왕, 요동 침략. 모용외의 아들 모용인이 방어. 아군 패배.
40. 385년 고국양왕, 4만 군대로 요동 습격. 요동 현도 함락. 1만명 생포하고 귀환.
41. 392년 고구려 광개토대왕, 거란 정벌. 국민 1만명 생환.
42. 401년 고구려, 숙군성 공격. 연 평주자사 모용귀 도주.
43. 403년 고구려 연나라 침략.
44. 498년 백제, 탐라국이 공물 납부하지 않는다면서 정벌군 구성. 탐라 용서 간청뒤 회군.
45. 512년 신라 이사부, 우산국 정벌.
46. 532년 금관국, 신라에 항복.
47. 598년 고구려 영양왕, 말갈무리 만명을 동원해 요서 침략. (수문제 반격 침공)
48. 662년 탐라국이 신라로 귀부.
49. 679년 신라, 사신을 보내 탐라국 경략.
50. 733년 신라, 말갈 남변 침략. 큰 눈이 내려 군사 절반 사망. 성과없이 귀환.
51. 819년 신라, 당의 요청에 의해 군사 3만 당에 파견. 운주절도사 이사도 반란 진압.
52. 918년. 고려 왕건 태조, 유금필 장군을 파견해서 금강산 북부 여진족 진압.
53. 1105년 고려, 임간 등을 보내 여진 침공.
54. 1107년 고려, 윤관 등 17만으로 여진 침공.
55. 1274년 고려, 몽골과 함께 일본 정벌.
56. 1281년 고려, 몽골과 함께 다시 일본 정벌.
57. 1354년 고려, 최영 등 군대를 원나라에 파견. 장사성의 난 진압.
58. 최영은 귀국해서 원이 관리하던 압록강 서부 8참을 수복했음.
59. 1388년 고려, 요동정벌군 출진. 아군 지휘부 내분으로 위화도에서 회군.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 통고에 반발한 군사 행동. 위화도 회군에도 불구하고 철령위는 설치되지 않았음.
60. 1389년 고려, 쓰시마 정벌위해 박위 등 군대 파견.
61. 1396년 고려, 쓰시마 정벌. 김사형 등 군대 파견.
62. 1419년 조선, 쓰시마 정벌. 이종무, 최윤덕 등 군대 파견.
63. 1434년 조선, 동북 6진 설치. 김종서. (고려말부터 계속된 영토확장 사업을 계승)
64. 1443년 조선, 압록강 상류 4군 설치. 최윤덕. (고려말부터 계속된 영토확장 사업 -서북면 설치-경신북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