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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건축은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아름다운 형태, 효율적인 평면, 새로운 기술, 높은 성능. 모두 건축을 평가하는 기준입니다. 다만 그 가치가 어느 시대에나 같은 것은 아닙니다. 삶과 사회적 조건 및 환경이 달라지면 건축에 요구되는 역할도 함께 달라집니다.
좋은 건축의 기준은 그 시대가 던지는 문제에서 시작됩니다. 무엇이 부족하고, 어떤 불편이 반복되며, 지금의 삶을 제약하는 것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에 건축은 오래전부터 공간과 구조, 재료와 기술로 답해 왔습니다. 시대가 달라졌다면 답뿐만 아니라 그 답을 판단하는 기준도 다시 살펴야 합니다.
문제는 현실보다 기준이 늦게 변한다는 데 있습니다. 가족의 형태와 일하는 방식, 에너지와 비용의 조건은 달라졌지만 넓은 면적과 화려한 외관은 여전히 좋은 건축의 증거처럼 남아 있습니다. 반면 그 안에서 사람이 편안한지, 유지에 얼마의 비용이 드는지, 시간이 흘러도 공간이 제 역할을 하는지는 뒤로 밀리기 쉽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혀 새로운 모습의 건축이 아닙니다. 눈에 띄는 형태나 기술만으로 새로움을 증명하는 일도 아니며, 필요한 것은 변화한 현실을 읽고 무엇을 먼저 판단해야 하는지 정하는 기준입니다. 이 공간은 누구의, 어떤 삶을 담는지, 성능은 생활의 쾌적함으로 이어지는지, 처음의 공사비뿐 아니라 오래 사용하는 비용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등을 비롯하여, 기후와 에너지, 인구와 가족, 건축비와 유지관리의 조건이 바뀌었다면 설계의 출발점도 달라져야 합니다.
이 질문들은 건축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판단의 순서를 구조화하고, 무엇을 지키고 어디에서 조정할지, 어떤 기술이 필요하며 비용을 어디에 써야 할지가 명료해집니다. 좋은 건축은 준비된 답의 반복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지금 무엇이 달라졌는지, 그 변화가 건축에 어떤 책임을 요구하는지 묻는 데서 출발합니다. 건축가에게 필요한 것도 모든 답을 알고 있다는 자신감보다, 익숙한 판단을 멈추고 질문을 다시 세울 수 있는 태도입니다.
기준은 고정된 규칙이 아닙니다.
현실을 설명하고 삶의 요구에 응답할 때만 살아 있는 기준이 됩니다. 시대가 달라졌는데도 이전의 답을 붙든다면, 그것은 전통이 아니라 관성입니다. 건축의 기준을 다시 묻는 일은 과거를 부정하거나 새로운 유행을 선언하는 일이 아닙니다. 달라진 현실 앞에서 무엇을 좋은 건축이라 부를 것인지 다시 판단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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