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 텍스트, 담론, 신화, 의미, 이데올로기의 연계성
1. 들어가며-기호라는 라퓨타
“기호학의 힘은 엄청나다. 기호학은 세계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주고, 텍스트를 분석, 음미하는 해석 방법을 준다.” 김경용 교수의 이 말에는 대부분의 기호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기호학 이론서들에 따르면, 세계는 기호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기호들을 읽어내는 방식에 따라 우리는 다른 세계를 가지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가를 명확히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반복해보자. 세계는 어떤 기호로 어떻게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읽어낼 수 있는가? 대부분의 기호학 이론서들이 이렇게 질문을 던지기만 할 뿐, 정작 구체적인 답변에는 인색했다. ‘모든 것’이 기호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우리가 겪는 ‘모든 것’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해온 것이다. 대신 그 이론서들은 소쉬르나 퍼스에서 시작되는 기호학의 위대한 계보를 외울 뿐이었다. 그 엄숙하고 빈틈없는 책들 앞에 선 우리들에게 기호학이란 그저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
아닌 게 아니라 현대인의 일상적 삶은 기호의 홍수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 우리의 전자메일에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수많은 유혹의 메시지, 중요한 사람을 만날 때 입는 옷과 악세서리, 우호적이거나 냉소적인 타인의 시선, 물리학이나 경제학 혹은 전자공학 등의 학문에서 사용되는 전문용어들,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 그리고 타인에게서 받은 선물 등 모든 것이 기호 아닌 것이 없다. 기호의 라퓨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기호에 나타난 의미와 숨은 의미를 생각하고 추론하며 또한 기호를 통해서 소통된다. 모든 영역의 문화적 삶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의식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자극이 약한 기호의 수준에서도 기호의 의미작용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의미작용을 일으키지 않는 것은 기호 이전의 기표일 뿐, 그것은 아직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기호라고는 할 수 없다. 기호는 기표와 기의의 통합체이다.
2. 기호와 의미
그렇다면 기호는 어떻게 의미를 만들어내는가? 언어학자인 소쉬르는 기호를 기표와 기의로 나누어 설명했다. 기표는 언어기호에서 청각과 영상을 의미하며 의미전달의 운반체, 혹은 무의식이 표출된 증상이라 말할 수 있다. 이에 반해 기의는 기표에 내재된 추상적 개념, 의미운반체에 담긴 내용, 혹은 무의식적 사고 내용이다. 다음의 예를 살펴보자.
닭: ‘닭’이라는 상징을 글자 그대로 가리킴(기표)
닭: 꿩과에 속하는 날지 못하는 가축이라는 개념, 또는 정신적 이미지
소쉬르는 기표와 기의 사이의 관계는 완전히 자의적이며 아무런 필연적 이유를 갖지 않는 관습, 즉 사회문화적 동의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의미라는 것은 기표와 기의 사이의 본질적 교류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차이와 관계로부터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기표와 기의는 자율적 실체가 아니라 체계속의 다른 요소들과의 관계 속에서 정의된다. 소쉬르의 말에 따르면 “단어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그것은 다른 단어나 개념과 관계 속에서 그 의미가 나온다. 개념은 완전히 차이에서 의미가 나온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 개념은 그것의 내용에 의해 긍정적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체계 속의 다른 개념과의 관계에 의해, 즉 차이에 의해 정의”된다. ‘닭’이라는 기표는 그것이 ‘닥’, ‘달’, ‘담’이 아니기 때문에 기의인 ‘닭’을 가리킬 수 있다. 결국 기호에 있어서 의미라는 것은 조합과 선택이라는 일련의 과정에 의한 결과이다. 쿨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언어학이 다른 문화현상들을 연구하는 데 유용하다는 생각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통찰에 입각해 있다. 첫째, 사회·문화 현상들은 그저 물질적인 객체이거나 사건이기만 한 것은 아니며 의미를 가진 객체이거나 사건이다. 즉, 기호이다. 둘째, 그것들은 본질(essence)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조직망(network of relations)에 의해서 규정된다.
소쉬르는 기호가 의미를 갖는 것은 관계 때문이라고 보았으며, 가장 기본적인 관계로 대립관계를 꼽았다. 즉, ‘밝음’은 ‘어둠’ 없이 의미를 가질 수 없고, ‘선’은 ‘악’ 때문에 의미를 얻는 것이다.
3. 구조주의와 기호학
구조주의는 1960년대부터 프랑스 지성계를 풍미하기 시작한 지적 전통으로, 문화와 경험보다는 이데올로기와 사회 관계의 구조에 초점을 맞추고 고도의 추상화를 행한다. 흔히 구조를 형식과 혼동하여 구조주의를 형식과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구조는 종래의 내용과 형식을 이분법적으로 분리 가능한 것으로 보는 관점에서 볼 때의 형식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여기서는 내용과 형식의 분리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지만 굳이 그같은 이분법적 입장에서 본다 해도 오히려 내용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구조가 바로 내용을 구성하는 논리를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조주의의 선구자 마르크스, 프로이트, 소쉬르와 현대의 대표적인 구조주의 이론가인 레비스트로스의 공통적인 입장은 표면적인 사건과 현상이 그 표면 밑의 구조, 자료 및 현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는 확신이다. 개인들의 의식적인 결정보다 더 기초적이고 심원한 차원에서 인간의 행위를 설명하고, 그러한 결정을 형성하고 구조화하고 또 그러한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심층구조, 무의식적 동기 및 저변의 원인을 발견하려는 시도가 구조주의자들의 공통점이다.
소쉬르는 언어의 체계(랑그)와 실제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말, 즉 빠롤을 구별한다. 랑그는 사회적인 산물이며, 빠롤은 개인적인 행위이다. 사회과학에서 구조와 행위의 관계를 어떤 학자든 논의하고, 또 어느 편에 서게끔 되는데 여기서 랑그는 구조이며, 빠롤은 행위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구조주의자들은 당연히 랑그를 중요시한다.
랑그는 비교적 불변하는 구조, 깊은 구조이며 빠롤은 일시적인 행위를 지칭한다. 전통적으로 언어학자들은 랑그를 연구대상으로 삼아왔으며, 기호학과 그 이론을 응용한 대중매체의 텍스트를 기호학적으로 분석하는 학자들도 랑그 체계를 분석대상으로 삼아왔으나 최근에는 빠롤에 대한 연구와 랑그에 대한 연구를 통합적으로 하는 경향을 보인다. 최근 소위 담론 분석의 경우는 통합적 예를 보여주는 것이다.
랑그의 체계를 좀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그것은 계열체와 통합체로 나누어 분석할 수 있다. 우리가 말을 할 때는 “나는 집에 간다”고 말한다. 이때 이 말은 통합체와 관계가 있다. 즉, “나는 집에 간다”는 말의 의미는 문장 속의 나와 실제 세계 속의 나와의 비교에 의해서 의미가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기호와 그 기호의 실제 세계에 있어서 지시물과의 관계다. 그러나 우리가 말을 하면서 “나는”이라고 말할 때 이것은 “그가 아니고”, 혹은 “네가 아니고”를 의식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기호학에서 텍스트의 의미구조를 본다는 것은 계열체의 구조를 보겠다는 것이며, 한 계열체 내의 각 가치 사이의 관계에 의해서 표현된 기호의 저변에 있는 의미구조를 보겠다는 것이다. 즉, 나타난 텍스트보다는 그런 텍스트 내의 기호를 통해 의미를 드러내는 기본 의미틀을 밝혀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별 의식 없이 사용하는, 혹은 그물망처럼 얽힌 일상에서는 나타나지 않은 구조를 보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빠롤 분석, 통합체의 분석은 현시적 구조에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고, 계열체의 기호학적 분석은 잠재적, 무의식적, 숨은 구조 즉 깊은 구조를 밝혀내려는 것이다.
4. 신화의 형성
문화인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는 문화를 하나의 체계로 보고 그 요소들 사이의 구조적 관계를 분석했다. 그는 문화체계에서의 보편적 양식을 인간 정신의 불변적 구조의 산물로 본 것이다. 그에게 사회생활의 모든 형태는 정신 활동을 규제하는 보편적 법칙의 작용을 의미하는데, 구조주의 언어학은 레비스트로스가 그의 인류학적 분석에 적용한 방법적 모델을 제공했다. 언어학에 있어서 언어와 말의 구분은 레비스트로스에 의해 심층구조와 그것이 변형된 표면구조의 부분으로 대체하였다.
레비스트로스는 심층구조가 행위자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모델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인간이 신화를 어떻게 생각해내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신화가 인간의 인지를 통하지 않고 인간의 입을 통해 자신의 구조를 내뱉게 되는가를 보여준다. 우리가 직접 관할하는 표면구조의 이면에는 깊은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제도나 관습, 신화의 구조 등이 인간이 타고난 불변적인 인간 정신의 표상으로 파악되기 때문에 행위자의 의도가 생략되고 있다.
대중문화 분석을 위해 소쉬르의 언어학적 모델을 이용한 바르트는 대중문화를 포함한 모든 문화적 행위를 언어행위로 보고 그 의미작용 과정을 분석하였다. 바르트에 이르게 되면 소쉬르의 기표와 기의는 일차적 의미작용인 ‘외연’과 이차적 의미작용인 ‘내포’로 용어가 대체된다. 바르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어떻게 해서 겉보기에는 솔직담백(straightforward)한 기호들이 이데올로기적이고 내포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며 문화적인 현상황(statusquo)을 유지하게 만드는가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는 신화를 언술행위의 한 종류라고 불렀으며, 신화는 언어와 유사하게 어떤 언술적 행위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신화는 ‘제2의 기호학적 체계’이다.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부르주아적 규범을 공격 목표로 삼았던 바르트에게 있어 신화란 그 사회 지배계급의 가치와 이득을 증진하고 유지하게끔 하는 사고와 실천의 체계로서의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
바르트는 소쉬르의 개념을 확대하여 한 문화 속에 기호들의 의미를 창출하는 방법에 이것을 적용함으로써, 소쉬르의 의미작용에 문화적 차원을 추가했다. 바르트에 따르면, 의미작용의 첫 번째 단계는 외연의 단계로서 기호의 상식적이고 명백한 의미가 창조되어 그 의미가 객관적으로 표현되고 쉽게 인식된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내포의 단계로서 기호가 사용자의 정서나 감정 및 문화의 가치와 조우했을 때 일어나는 상호작용에 의해 의미가 창출된다. 그리고 이 두 번째 단계에서 기호가 작용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서 바르트는 이것을 신화가 형성되는 과정(형식)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개별 내포와 신화의 차이는 내포가 감정의 차원인 단일 차원인 데 반하여 신화는 개념의 연쇄라는 데 있다. 이런 신화를 계급적 차원에서 논하면 신화는 현재 세상을 자연스럽게 보이게 하는 이데올로기와 연관된다.
5. 신화와 이데올로기
알튀세는 중층적 결정론의 개념에서 사회 구성체에 있어서 다양한 실천 행위들이 저마다 어떤 고유의 효율성을 갖는,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데올로기, 즉 다양한 재현의 체계는 결코 단순한 경제적 토대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의 실천 행위로서 존재한다. 그리하여 이데올로기와 계급 구성의 관계를 새로이 조명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 것이다.
바르트에 따르면, 모든 기호학적 체계가 신화적인 것은 아니며, 또한 모든 기호가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전달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어떤 기호는 정서적으로 중립적인 반면에 다른 기호는 사람들을 특정한 세계관으로 빨아들이는 강력한 내포적 의미를 얻게 되는가? 다음과 같은 사례를 통해 바르트가 말한 의미작용의 과정을 살펴보자.
사례 1.
‘개’라는 언어적 기호
‘개’의 일차적 기의: 네 발 달린 개과의 짐승
‘개’의 이차적 기의: 여름에 특히 맛있는 음식, 못마땅한 인간
사례 2.
‘사자’를 그린 영화사의 로고
‘사자’의 일차적 기의: 네 발 달린 고양이과의 짐승
‘사자’의 이차적 기의: 당당함 · 용맹함 · 사나움 등
사례 3.
‘아버지와 딸’의 동영상 시각기호
‘아버지와 딸’의 일차적 기의: ‘아버지와 딸’이라는 두 사람
‘아버지와 딸’의 이차적 기의: 다정하다, 사랑스럽다, 행복하다 등
| 기호의 의미작용 과정 |
일차적 의미작용
외연적, 지시적 의미
(Denotation) | 1. 기표
(signifier) | 2. 기의
(signified) | |
이차적 의미작용
내포적, 함축적 의미
(Connotation) | 3. 기호(sign)
I. 기표(signifier) | II. 기의(signified) | |
III. 기호(sign) |
위에서 제시한 사례 2나 사례 3은 이차적 의미작용에 머무르지 않고 삼차적 의미작용으로 나아간다. 사례 2에는 사자를 그린 로고를 보고 떠올릴 수 있는 당당함, 용맹함 등의 기의를 통해 이 로고를 사용하는 영화사가 ‘영화계에서 차지하는 권력’이라는 신화로 이어져 막강한 자본과 영향력 있는 스타배우를 보유하여 영화계를 좌지우지하는 실세로 기능하는 영화사와 그렇지 못한 영화사의 존재를 상정한 부르주아 지배 이데올로기가, 사례 3에는 ‘자상한 아빠와 귀여운 딸’로 구성된 ‘화목한 가정’, ‘행복한 가정’ 등의 가족 신화로 이어지며 가정을 지키고 보호하는 지위의 아버지와, 보호와 사랑을 받아야 하는 딸의 존재라는 가부장제 지배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다. 물론 사례로 든 기호를 접하기 전에 우리는 이미 과거의 경험을 통해 이러한 신화를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신화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6. 통합체와 계열체
기호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의미를 생성하는 방식을 위에서 잠시 언급한 통합체적 축과 계열체적 축을 통해서도 설명할 수 있다. 계열체란 가능한 선택 또는 대체물과 관련이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계열체 분석을 통해 신화 속의 이항대립이라는 기본구조를 찾아냈다. 그는 어떤 종족의 신화이든 관계없이 모든 신화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이야기구조의 핵심요소로 대립쌍을 제시한다. 이 대립쌍은 추상적 수준과 구체적 수준을 넘나들면서 의미를 생성한다.
| 신화의 대립쌍 구조 |
선 : 악 | 추상적 수준의 대립 | |
우리(us) : 너희(them) | 구체적 수준의 대립 | |
인정 있는 : 인정 없는 | ||
인간다운 : 비인간적인 | ||
감성적인 : 냉혈적인 | ||
문명적인 : 야만적인 |
계열체적 분석에서 드러나듯, 기호들은 실제로는 복잡한 현실에 대해 이분법적으로 단순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문장 밖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실에 근거하지 않고서도 의미 바꾸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기호는 현존하는 실체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통합체는 연쇄이며, 통합체 분석이란 텍스트를 어떤 종류의 이야기체를 구성하는 사건들의 연쇄로 파악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민속학자 프로프를 통합체 분석의 선구자로 볼 수 있는데, 그는 100여 개의 러시아 민담을 연구한 결과, 보편적인 6단계의 흐름을 찾아냈다.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해볼 수 있다.
| 프로프의 분석 |
준비단계 → 복잡화 단계 → 이주단계 → 투쟁단계 → 귀향단계 → 인식단계
선 : 악
영웅 · 도우미 · 증여자 · 공주 · 파견자 : 악당 · 가짜 영웅
프로프의 분석이 가지는 의의를 우리는 ‘신화의 효과’에서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이야기가 언제나 시작단계와 비슷하게 끝맺음으로써 갈등을 초래한 사회적 모순을 잊고, 늘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으로 갈등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남는 것은 영웅에 대한 관심과 흠모뿐이다. 예를 들어, 지하철이 파업할 경우, 우리는 파업의 이유보다는 깨져서는 안 될 안정을 빨리 회복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데 이것이 이야기 구조의 신화 효과다.
7. 신화, 폭로해야 할 환상
바르트는 대중문화의 여러 측면들을 토로하면서 이데올로기에 의해 자연스러운 것, 당연한 것으로 호도된 사회의 고정관념들을 분석해나갔다. <신화론>에서 그는 소쉬르로부터 영향받은 기호학적인 방법을 통해 대중문화의 숨은 이데올로기를 읽어내고 있는데, 그는 사회 내의 기호의 생태에 대해 연구하는 과학을 기호학이라 지칭했다. 그는 “나는 현대생활을 설명하면서 자연과 역사가 혼동되는 것을 목격하고 분노를 느낀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위장된 이데올로기의 함축을 폭로하면서 대부분의 경우에 ‘신화’를 폭로해야 할 환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테면, 아파트는 한때 우리나라에서 부자들의 소유형태로 인정되었다. 특히 압구정동의 현대아파트는 사회적 규약에 의해 부의 상징으로 만들어졌다. 다른 아파트가 많이 존재하지만 부를 의미하는 신화적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이때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신화의 지위를 획득한다.(최근에 와서는 타워팰리스로 기표가 전환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1987년 대선 때 등장한 ‘보통 사람의 신화’라는 것이 있다. 대통령이라는 권력자 역시 대중과 똑같은 평범한 인간이며, 평범한 서민들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다. ‘이 사람 노태우는 보통 사람입니다’라는 담론 속에서 보통 사람의 신화를 교묘히 만들어내어 권력을 획득했던 것이다.
바르트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의미를 간략히 언급하고, 그 의미를 풍자적으로 확장하거나 그들의 관계를 깊이 생각한 다음, 그 대상에 내재된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지적함으로써 사람들을 신화의 올가미로부터 끄집어낸다. 이것은 당시 사회에서 쉽사리 볼 수 있는 현상이나 사건들 하나하나를 신화로 보며, 그 신화 속에는 독자 내지 대중으로 하여금 그 신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려는 간교한 책략이 있다고 보고, 그 책략 내지 허구성을 드러내 보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즉 개개의 현상이나 사건은 하나의 기표로서 하나의 기의를 갖지만, 그 기의는 조작된 것으로 그것을 파헤쳐 감춰진 다른 기의를 찾아낸다는 전략이다.
8. 기호, 텍스트, 담론, 신화, 의미, 이데올로기의 연계성
소쉬르와 레비스트로스를 정점으로 바르트와 그레마스에 의해 만개한 기호학 이론소들은 언어, 연극, 인류학, 영화, 요리 등에서 포섭적으로 축적되며, 급기야 기호학은 미학적 논의의 틀로 부상하여, 텍스트로서의 음악과 회화 및 건축-특히 남미와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된-의 기호학을 야심차게 추진한다. 문학기호학에서는 미학적 심층으로서의 심미성과 문학, 그것을 시공간적으로 실현하는 연극에 대한 담론을 분석한다. 이를 통하여 기호학은 이야기와 신화로부터는 분석대상을, 텍스트 층위에서 수사학과 문체론의 범주들로부터는 정밀한 분석도구를 확보한다.
21세기의 인류가 만끽하는 미디어폴리스(Mediapolis) 시대에 기호학은 미디어, 영상, 영상과 텍스트, 지도, 만화, 사진, 영화, 광고 등 포스트모던 사회를 각인하는 다양한 코드들을 진단한다. 나아가 기호학의 미래를 문화, 마법, 일상생활 등의 거시 코드를 조율하는 메타 코드로서 점치고 있다. 사회적 층위에서는 막시즘을 기호학과 연계한 이탈리아의 로시-란디, 그리고 기호를 상징자본으로 조명하는 부르디외의 논의를 거쳐서, 기호학은 문화학으로서의 사회과학으로 확장된다. 오늘날 기호학이라는 프로젝트는 이론과 실제 사이의 간극이 가장 적은, 현학적이지만 실제적이고, 학문적이지만 상업적인 이율배반을 극복하는 학제적 과제로 규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