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토 Sanctus Benedictus de Nursia, 480~547
— ‘좋게 말한’, ‘축복된’이란
— 서방 수도승의 아버지, 베네딕토 수도회 창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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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도 규칙서’ (Regula Benedicti)
— 요한 카시아노로부터 지대한 영향, ‘스승의 규칙서’ (Regula Magistri)와 내용 거의 비슷
— 균형과 중용, 합리성, 중세 대부분의 교회 공동체는 이같은 베네딕토의 정신의 적용을 받아 세워짐
베네딕토는 이탈리아 수비아코에 열두 개의 수도 공동체를 세웠으며, 나중에 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몬테카시노 산으로 자리를 옮겼다.[2] 그가 세운 몬테카시노 대수도원은 서방 수도원의 발생지가 되었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베네딕도회의 총본부가 되고 있다. 베네딕토가 세운 베네딕도회는 마치 하나의 수도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가 세운 수도 회칙을 따르는 개개의 수도원 연합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당시 몬테카시노 인근의 주민들은 이교를 신봉하고 그 산 위에 아폴론 우상을 세우고 있었다. 그래서 베네딕토는 아폴론에게 바쳐진 이교 신전들을 모조리 파괴하고 그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으며, 530년경에는 그 곳 산정에서 베네딕토의 설계와 지시 아래 모든 베네딕도회 수도원의 모체가 된 수도원과 성당을 세웠다.[8] 몬테카시노 수도원을 짓는데 전해지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 인부들이 커다란 돌을 옛 아폴론 신전에서 들어 올리려 했으나, 이상하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에 인부들이 베네딕토에게 말하자 베네딕토는 이것이 악마의 장난임을 알고 구마 기도를 바쳤다. 그러자 악마가 달아나고 바위는 아주 가볍게 들어올려져 건축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한다. 베네딕토는 자신이 직접 지은 몬테카시노 수도원에서 수도 공동체를 위한 규칙서인 《베네딕도 규칙서》를 저술하여 올바른 금욕생활과 기도, 공부, 육체 노동의 역할을 엄격하게 규정하는 등 본격적으로 공동체를 지도하기 시작했다. 그의 규칙은 점차 서방 교회의 모든 수도원의 법전이 되었고 다른 수도규칙의 모범이 되었으며 교회 영성과 서유럽 문화 진흥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가 세운 몬테카시노 대수도원은 서방 수도원의 발생지가 되었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베네딕토 수도회의 총본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