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것은 지금의 모습만이 아닙니다.
자갈 마당과 디딤판을 중심으로 다양한 높이의 식재와 소나무, 담장 너머 산 능선이 어우러지는 속초 패시브하우스 노학담집 정원.
하나의 장소에는 눈에 보이는 풍경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그곳을 지나온 시간, 사람들의 기억과 경험, 서로 다른 기대와 바람이 겹쳐 있습니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도 그 안에 머물러 있지요. 우리가 지금 마주하는 모습은 수많은 관계가 만들어 낸 하나의 장면일 뿐입니다. 그래서 어떤 장소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현재의 모습을 살펴보는 데서 그치지 않으려 합니다. 무엇이 이곳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는지, 어떤 조건이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을지 질문합니다.
건축과 공간을 계획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지의 면적과 형상, 건축물의 현재 상태, 법적·기술적 조건은 반드시 검토해야 할 현실적인 기준입니다. 하지만 그 수치와 조건만으로 장소의 모든 가능성이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그곳에서 살아갈 사람의 생활 방식, 공간을 사용하는 목적, 주변 환경과의 관계,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질 수 있는 요구까지 이해해야 비로소 계획의 방향이 구체화됩니다. 같은 면적의 대지라도 가족이 오랫동안 살아갈 집을 계획하는 경우와 숙박시설을 개발하는 경우에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달라집니다. 기존 건축물을 리모델링할 때도 그 공간의 특징을 보존할 것인지, 새로운 사용 방식에 맞춰 재구성할 것인지에 따라 접근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고객이 처음 제시한 요구를 다시 살펴보는 과정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발견됩니다. 가령 더 넓은 공간을 원한다는 말이 반드시 면적을 늘려야 한다는 뜻은 아닐 수 있습니다. 답답한 동선이나 시야를 가로막는 공간 구성, 부족한 채광이 실제 문제라면 평면의 배치와 시선, 빛의 관계를 조정하는 것으로도 사용 경험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문제를 공간 구성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요구를 곧바로 형태로 옮기기 전에 그 요구가 생겨난 이유를 이해하는 태도입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조건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서로 무관해 보였던 요소들 사이에서 새로운 연결을 발견할 때 생각하지 못했던 해법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발견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일만은 아닙니다. 이미 그곳에 존재하지만 아직 알아보지 못했던 의미를 읽어내는 것, 익숙한 풍경에 숨어 있던 가능성을 새롭게 이해하는 것 역시 발견입니다. 비온후풍경과 사이프러스9++가 사람과 장소, 공간을 서로 분리된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 이유입니다. 각각의 모습보다 그 사이에 놓인 관계를 이해하는 일이 우리에게는 더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